제목 집에서 맛보는 바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8-24 조회수 4183

집에서 맛보는 바다
 
 

시대가 좋아졌다. 새로 닦은 고속도로를 타면 서울에서 강릉까지 세 시간. 하늘도 안 보이는 서울을 벗어나 무작정 차를 달리다보면 바다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거다.

주문진항에 차를 멈추고 잠시 내리면 새벽 내 만선을 이룬 오징어잡이 배들이 가득하다. 오징어 값을 흥정하는 상인들 틈에 껴서 만원어치만 사도 한 곁에 자리 잡고 회를 떠서 먹기에 그만이다. 오천 원 양념값만 내면 회는 그냥 떠주니까.

 

얼큰해진 기분으로 주문진 항을 돌아보다 걸음 내키는 회 집에 들어 밥값을 깎는다.

대한민국 대표생선인 광어와 우럭은 물론 얼룩말 같이 생긴 돌 돔,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물 메기가 헤엄치는 수족관. 바닷 바람이 평소에 없던 식욕까지 당겨 놓아 뭐든지 맛있을 것 같다.

 

 

● 참치 샐러드

요리사들이 참고서로 쓸 만큼 정교하게 그려진 만화 ‘식객’을 보면, 생태 탕 한 그릇의 승부를 위해 거진까지 달려간다. 싱싱한 명태를 잡기 위해서다.

 

김장은 배추가 좋아야 성공하고, 생태 탕은 생선 물이 좋아야 제대로 라는 당연한 얘기지만 도시에 살면 파닥거리는 재료를 보기가 힘들다. 물 좋은 재료를 먹고 싶으면 맘먹고 산지에 가는 수밖에.

덕분에 냉동 재료나 반 조리 식품을 지혜롭게 응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인다. 열대야 때문에 잠 못 드는 이들이 자주 찾는 대형 할인매장의 ‘냉동’ 식품코너가 우리 서울 사람들에게는 산이요 바다니까. 묵직한 도막 하나에 칠팔 천 원 하는 냉동 참치를 산다. 집에 오는 동안 서서히 해동이 될 것이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 다음 깨를 고루 묻혀서 팬에 지진다.

 

간장 약간에 참기름을 살짝 섞은 오리엔탈 드레싱을 만들어 어린잎들을 버무려낸다. 드레싱의 포인트는 살짝 섞어 넣는 고추냉이 인데 톡 쏘는 맛이 더해져서 참치와 먹을 때 맛있다. 마트에 ‘무화과’가 보여서 한 통 산다. 무화과가 덜 익었으면 칼집을 내어 오븐에 살짝 구웠을 텐데 딱 알맞게 익은지라 그냥 그대로 샐러드 위에 올린다.

 

짭짤하고 매콤한 드레싱의 어린잎들과 설구운 참치, 그리고 은은한 단 맛이 돋보이는 무화과가 어울어져 짠맛, 신맛, 단맛의 조화가 탄탄해진다. 재료가 싱싱하지 않으니까 고추냉이나 무화과 같은 잔꾀가 필요하지만, 코스 요리의 전채나 와인 안주로 적합하고 만들기도 손쉬운 요리다.

 

 

● 차가운 조개 모둠

 

술 좋아하는 남편과 나를 위해 늘 냉동고에 저장 되어 있는 재료가 바로 조개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아침에도 조개만 얼른 우려낸 국물로 속을 풀 수 있으니까. 백합, 소합, 모시조개 등을 이용하여 국물을 내고 조개는 건져서 식힌다.

 

아주 잘게 다진 양파를 와인 식초와 소금, 후추로 간해서 푹 재웠다가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조갯살에 뿌려 먹는다. 사각 씹히는 양파랑 새콤한 식초 맛으로 조갯살 몇 점 씹다보면 숙취로 잃은 입맛이 돌아온다.

 

음주 후에는 속이 냉(冷)해져서 오히려 뜨거운 음식이 좋다지만 내 경우에는 사실 물김치나 시원한 하드같이 찬 것을 더 찾게 된다. 당장의 시원함이 미덕인 한 여름에는 특히 더 그렇다.

파스타와 같이 일반적으로 따뜻이 먹는 음식도 음주 후에는 차게 먹는다. 예를 들어 조개 파스타. 삶아낸 국수를 올리브유와 편으로 썬 마늘 그리고 조갯살에 볶아내고 미리 우려낸 조개 국물을 조금 넣고 바짝 가열하여 간을 맞춘다. 그리고는 차게 식혀서 먹는데 튜브 형으로 생긴 ‘페네’ 파스타 등을 이용하면 버섯이나 피망을 섞어 넣어 차가운 그대로 샐러드처럼 먹을 수 있다.

 

반대로, 조개 모둠을 뜨겁게 먹을 때에는 삶아 건진 조갯살에 다진 마늘과 버터, 빵가루와 치즈를 섞어 덮은 다음 오븐에 잠깐 넣는다. 치즈가 녹고 빵가루가 바삭해 질 정도만 가열하면 되는데 조개탕 끓이고 남은 조개를 처분하는데 아주 좋은 방법. 조개를 즐겨 먹지 않는 아이들도 좋아해서 친구를 집에 데려왔을 때 푸짐하게 만들어 주면 ‘요리 잘하는 엄마’처럼 보일 수 있다.

 

동전만한 냉동 칵테일 새우는 녹말 물을 입혀서 튀기면 팝콘처럼 맛있는데 여기에 토마토 소스나 탕수 소스 혹은 스프링 롤을 찍어 먹는 동남아 소스를 곁들이면 별미다. 냉동 민어는 살짝 볶아낸 숙주와 함께 춘권 피에 말아서 튀겨내고, 냉동된 훈제 연어는 녹여서 얇게 포를 뜬 다음 떠먹는 요거트로

만든 새콤한 소스를 곁들여 양상추에 싸먹으면 맛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이래저래 휴가를 못 떠났으면 시원한 할인매장을 어슬렁거리다가 냉동 해산물이라도 사오자. 갓 잡은 오징어나 펄떡 거리는 횟감에는 못 하더라도 그런대로 입맛 도는 특식을 만들 수 있으니까.

 

저렴한 냉동 해산물 들고 불앞에 서서, 땀 쪽 빼면서 요리 해먹고 찬 물로 샤워를 한 판 하면 시원하다. 냉장고에 수박이 한 통 있으면 더 좋겠고. 바닷바람이 마음에 가득한데 밀린 업무로 휴가를 못가는 나의 주말 모습이다.

 


                                                                                           - 출처 : 엠파스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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